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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렴적 읽기/시를 읽지 Poem

고은, <마치 잔칫날처럼>

by Minking 2014. 11. 27.

돌아와 주세요


- <마치 잔칫날처럼> 5부 앞부분을 읽고

  



  

돌아보는 일


한참 뒤를 돌아보았다. 앞이 보이지 않아서 뒤만 자꾸 되짚어 보았다. 그런데도 지나온 날들이 잘 헤아려지지 않았다. 십수년 교과서에서 배웠던 그대로를 대부분 따르며 순순히 살았다. 무엇엔가 뒤처지지 않기 위해 다가올 미래를 위해 힘껏 살아야 된다고 배웠다. 미래의 기둥이라는 아이들을 다독이고 기대하면서 그 힘으로 다시 버텨 왔다. 그래도 나름대로 자부하면서, 저들에게 꿈과 희망을 불어넣으면서 한편으로는 무엇인가를 믿고 싶었다. 이 쌓아가는 시간의 주름만큼 반대급부의 희망이 있으리라 믿고 싶었다. 그렇게 이어가다 보면 지금은 잘 이해되지 않는 현실 너머의 무언가를 발견하게 될 줄로 생각했다. 그러나 어느 순간 그게 아니었다. 나도 모르게 멈출 수밖에 없었다. 걸어갈 힘도 없고 앞도 잘 보이지 않았다. 누군가는 번아웃증후군이라고 했고 누군가는 다시 여행을 가라고 했다. 오랫동안 먼 길을 돌아다녔지만 다시 돌아오니 당장 한 발짝도 걸어갈 용기가 나지 않았다. 자꾸 절뚝거리며 제자리만 도는 느낌이었다. 세월호. 그 날 이후로 나는 머리가 조금씩 빠졌고 폐가 자주 뜨거워졌다. 내가 조금이라도 안다고 생각한 학교살이를 다시 원점에 돌려 놓고 나름대로 믿어 온 방식도 모두 내려 놓았다. 아이들에게 한마디씩 던져 주던 어른의 평범한 모국어조차 체에 하나씩 걸러 내고 있었다. 그러자 저들에게 달리 할 말이 없었고 자꾸 다른 것을 탓하고 싶었다. 목숨이 걸려 있기도 한 이 사회의 모순이 내가 가르치는 저 아이들 세대에도 쉬 끝나지 않을 것인데, 여전히 양발을 다른 세계에 담그고 저들의 맑은 눈높이에 맞춰 꿈을 말하는 것은 희극이자 비극이었다. 작게 숨 쉬고 작게 노닥거리던 저 빛나는 성에서만 살고 싶었다. 하지만 잠이 오지 않을 정도로 화가 치밀었다. 그렇게 혼자 받아 쓴 시들은 거의가 촌스럽고 냉소적이었다. 이전엔 상상하지 않은 욕설들도 난무했다. 혼자 이 따위를 쓰고 있는 것이 참 싫었다.

 

시인은 말했다. '굴뚝들 저마다 피워 올릴 연기를 꿈꾸는 것' ( <>, 349) 이 시였다고.

정체 모를 화가 계속 끓어오르고 내려가는 일이 반복되면서 고통스러웠던 것은 막상 내가 나와 제대로 만나지 못했었다는 자각이었다. 더 이상 꿈꾸지 못하는 나에 대한 절망이었고 그렇게 만든 대상과 구조에 문제를 내맡기고 도망치고 싶은 생각 때문이었다. 손님처럼 찾아와 주인 같기도 한 시와의 만남은 그래서 나를 대면하는 일이라는 걸 깨달았다.

  



 

안에서

삽사리 꼬리 기쁨이 마중 나왔다

안에서

내 마음이 마중 나왔다

 

철모를 벗고

총을 내려놓았다

탄띠를 풀었다

황소가죽 워커를 벗고

왼발부터 양말을 벗었다

맨발 둘이 새싹인 듯 불쌍하게시리 나와 있다

 

 

아내의 사진을 바라보았다

울음이 이루어졌다

 

<> 전문, 387

 



 

울음의 완성을 위한 일


부재는 제대로 된 울음조차 이루어내지 못한다. 집이 있어서 우리는 떠날 수 있다. 거기가 어디라도 떠나온 곳으로 돌아올 기대를 품고 다시 갈 수 있다. 아직도 돌아오지 못한 영혼들, 무장해제하고 돌아와 맨발로 뛰어다녀도 좋을 어린 영혼들까지 아직 바다에 있다는 것을 기억해 본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기억해내는 일뿐이라 하더라도. 아직 명확해진 것들은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서 있는 자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라싸에서>에서 시인이 말하는 것과 같이, ‘상거지처럼 구걸하듯 내 안에서 도려내어진 생각들을 작게나마 세상의 창에 덧대어 보는 일이 아닐 수 없다. 티벳 불교에서 마니차라는 것은 경문을 한 번 읽은 것과 같은 수행기도 중 하나라고 했다. 이 시대는 마니차를 돌리는 행위조차 터치 한 번으로 될 것처럼 신속하고도 간결하다. 앞을 향해 빠르게 전진하며 군더더기 없어 보이던 우리 사회에, 그 누구도 지울 수 없는 점이 아홉 자 찍혔다. 회피하지 말 일이다. 마니차 돌리듯 기도하는 마음으로, 아직 돌아오지 못한 저 어린 벗들과 어른 벗들의 영혼을 위로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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