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 사소한 쉼표
  • 다시, 사소함으로
  • 길고 사소한, 발걸음
기록이 나의 힘/칼럼 Column

나는 겨우 편지만 쓴다

by Minking 2011. 3. 16.



나는 겨우 편지만 쓴다

                   - 일본에 보내는 편지



                                                  윤민경




저기에 정말 사람 비슷한 이가 살고 있었던가
집 같은 것도 있었단 말인가
좋아하는 식당도 주인의 살뜰한 회 한 접시도
가판대 신문
너른 공터
벚나무가 핀 골목도
거기에 학교는 얇은 교과서 한 권처럼
꾹 눌러 구겨 넣은 채 빨간 가방에 넣고
가족과 친구까지 끝내 묶어서,
검은 물 아래로 내려가
독한 불길 속으로 들어가
죽음과 기어이 손잡았구나 너는

내가 만난 최고의 아픔을 가져와
너를 다시 만나 보려 해도
너는 이미 더 깊은 자리에 앉아 고개 숙이고 있구나
눈물도 재가 되었구나
가쁜 숨마저
아래로 몰아쉬고 있구나

모두 그림자 속에 흐트러지고 찢겨도

네 생의 마지막장 그 귀퉁이라도 네게 붙어 있거든
아 어찌 부탁할까
부디
그대여
살아만 있어라
할 수만 있거든 단 하루라도 더 살아만 있어라
지구가 양 손을 모두 올려
그대 배를 두루 두루 쓰다듬고 있으니
너는 기어이 숨을 쉬어라
손가락 하나라도 움직여
그대에게 남은 생의 불길을 천천히 일으켜라

근대사 공부는 다 끝났는데
아직 확인할 숙제가 있던 너와 나 사이
그래도 너와 나는 배로 넘나들 만한 곳에 놓인
우리 아니냐

울 없이 너나 없이 드나드는
너나들이 아니냐

우리끼리 불러 볼 이름도 자꾸 떠내려가고
드나 들 배도 저 불 타는 구름 위에 정박해
여전히 내려오지 않으니

빗물에 해일에
옆집 변기를 우산 삼아 머리에 이고
오늘 하룻밤
따스한 봄꿈 꾸며 버틸 너의 그 자리에,
시원하게 생수처럼 마시지도 못할
내 눈물 한 접시 담아 얹기도 나는 미안하여서

부치지도 못할 편지만
간신히 한 통 쓴다
너 어디서든 받고
너 살아서 꼭 읽어라

(2011년 3월 16일 수요일, 타이완에서 민경)





::Note::

이 편지를 날라 주세요

- 한국에 보내는 편지


아는 일본인 친구가 한 명 있습니다. 사실 밥 한 번 먹어야 친해지는 한국인으로서 아직 빵 한 조각 나눠 먹지 않고 오가며 인사만 나누는 사이, 그래서 그리 친한 것도 아니었지만 어제 얼굴을 보자마자 가족의 소식을 확인하였습니다. 다행히 가족들은 무사하다는데 저는 갑자기 눈물이 났습니다. 오히려 친구가 눈물을 닦아 주었고 저는 뭐라 할지 잠시 말을 잃었습니다.

일본과 우리는 멀고도 가까운 사이라고 늘 입버릇처럼 이야기했습니다.
누가 뭐래도 진실은 여전히 거기에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적어도 ‘멀고도’라는 말은 좀 빼야 되겠습니다. 지금 저들의 고통 앞에 잠시 우리는 더는 무슨 말을 할 형편이 못 되는 것 같습니다. ‘할 말이 없는 상태를 유지하는 것’ 외에는 진정 도울 수 있는 게 없어 보입니다. 심지어 한국은 그에 비해 안전한 나라인 것 같지 않느냐며 소리 죽여 작게 감사하는 것조차도 참으로 민망스러울 지경입니다.

그래서 할 수만 있다면 그 어떤 나라보다 우리 한국이 일본의 가깝고 좋은 친구가 되어 주었으면 합니다. 앞뒤 재지 말고 이럴 때 불쑥 손잡아 주는 나라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마음으로, 실질적인 움직임으로 한국의 온기를 전해주었으면 합니다. 이 참담한 재앙이 혹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탓하고 무엇인가를 돌아보는 ‘수단’이 굳이 되어야만 한다면, 전 세계 유래를 찾아 볼 수 없는 특별한 ‘사랑의 수단’이 되었으면 합니다. ‘사랑이 허다한 허물을 덮는’ 기적이 일어났으면 합니다. 그래서 할 수 있다면 온 세계가 ‘사랑의 쓰나미’를 경험했으면 합니다. 거기에 작은 아이 한 명부터 어른까지, 국적불문 함께 참여했으면 합니다. 그리고 거기에 한국이 먼저 기를 꽂고서 발 벗고 같이 나섰으면 합니다.
그러나 저 역시 아직 저들의 고통 앞에 아무 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어 밥 한 공기 따뜻하게 지어 바치듯 시를 편지 삼아 한 통 지었습니다.
하지만 이 부치지 못할 편지가 마음으로 거기까지 가 닿고 한국으로도 가 닿아, 죽음의 불길이 번진 그 곳으로, 한국인 고유의 ‘사랑의 불길’이 더 번져 올랐으면 합니다. 방사능이 우려된다고 하는 죽음의 땅 위로 밝은 생명의 빛을 계속 쏘아 주었으면 합니다. 

편지를 쓰며 저 역시 여기 타이완에서 어떤 일을 할 수 있을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교사로서, 참으로 작은 우리 아이들과 무슨 이야기를 해 봐야 좋을까 생각했습니다.
저 분들도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침착하게 살아 있는데, 그리고 어딘가 살아 있을 생존자분들 역시 희망의 끈을 놓치 않고 있을지도 모르는데, 우리는 더 힘을 내야 되겠노라고 말해야 되겠습니다. 우선 오늘의 공부를 게을리 말고 열심히 기쁘게 하자고 파이팅 한 번 외쳐야 되겠습니다.
작게 안도만 하지 말고, 심지어 너무 무관심하지 말고, 나아가 저들 속에 들어가 잠시 앉아 있어 주는 이웃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완전히 그들처럼 될 수는 없어도 저들 마음 근처까지는 내려갔다 오는 우리는 될 수 있겠습니다.


아, 부디 한 명이라도 더 살아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어린이도 숱하게 잠겨 있을 생각을 하니...... 말줄임표가 왜 필요한지 알겠습니다.

 

2011년 3월 16일 (수)
윤민경 드림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