雲南 운남걷다_2011_20days/Hutiaoxia 후티아오샤
1월 31일(월) 운남 D+9: 호도협虎跳峡감사하다.
Minking
2011. 1. 31. 21:38
한국어 자판을 쓸 수 있어서 일단 참 감사하다.
그 동안 한 다섯 군데 유스호스텔과 게스트하우스를 다니며 한국어 버전으로 설정을 바꿔 보려 했지만 안 되었고, 그러면서 새롭게 알게 된 것은 중국에서는 한국어 버전을 설정할 때 한국어가 '韩国语'라고 되어 있는 게 아니라 '朝鲜语'로 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한국의 이름은 한국이고 그래서 한국어는 한국어라고 되어 있어야 하는데 조선어? 미국은 미국어로 되어 있고 독일도 독일어로 일본도 일본어로 되어 있는데 버젓이 우리의 나라 이름이 한국인데도 조선어로 되어 있다는 점은 무엇인가 조금 이상하게 느껴졌다. 중국엔 조선족이 있고 그들의 언어가 한국어라는 점, 실상 조선족들이 한국에서 건너간 것임에도 마치 한국을 조선족의 일부로 생각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었지만, 다만 나의 상상일 뿐이었다. 그리고 중국은 페이스북이 되지 않는다는 점도 조금 신기했다. 어쨌거나,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문명과 동떨어져 있는 이 곳 산 중턱에서 가장 빠른 속도의 인터넷이 될 줄은, 그리고 그것도 한국어 설정이 될 줄은 미처 몰랐다. 덕분에 그 동안 찍은 사진들 중 일부를 약간 올려 볼 수 있게 되었다. 이미 2천장을 넘겼다. 메모리 여분이 얼마 남지 않아서 한 번 백업을 해야 되는 때가 왔다.
중국은 인터넷이 타이완보다도 한 19배는 더 늦은 것 같고, 사실 컴퓨터를 들여다 보는 것이 귀찮고 싫어서 일부러 가이드북을 잔뜩 사고 분철해서 하나씩 버려 가며 가지고 다니긴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동안 컴퓨터에 순간 순간 놓치기 쉬운 하루의 일상들을 메모형태로라도 기록해 놓고 나중에 이어 붙여 보려던 계획은 결국 언어의 장벽으로 어렵게 되고 말았다.
그러나 무슨 상관! 그 동안 참 많은 일들이 있었고, 그 모든 것이 오롯한 추억으로, 나의 자산으로 남게 될 것에 대해 다시 한 번 너무 감사하기만 하다.
대충 내가 방을 구하고 돌아다닌 방식은, 크게 세워 둔 일정 안에서 다음 마을로 가서 묵게 될 유스호스텔과 게스트하우스 정보를 책으로 확인한 뒤 지도에서 먼저 파악하고 전화를 걸어서 방이 있나 물어보거나, 아니면 여기서 만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다음 숙소의 정보를 얻어 듣고 찾아가는 식이었다.
생각보다 재미있었다. 어디서 어떻게 묵게 될 지 일일이 다 정해 놓고 다니는 게 가장 안정적이지만 17일의 일정은 굳이 그럴 필요가 없을 거라는 게스트하우스 사장님의 충고가 분명 맞았다. 지난 번 정희, 진하와 중국을 여행했을 때는 일정이나 숙소, 환전, 사소한 일들에 대해 전혀 모른 채(둘이 이미 너무나 훌륭했기에) 나의 임무는 구석구석 사진을 찍고 일상을 기록만 했던 터라 정작 내가 그 여행의 과정에 대해 관여했던 점은 그리 많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엔 전부 혼자 해야 되는 것이어서 처음엔 생각보다 걱정스러운 면이 많았는데, 지금 느끼고 있는 점은 나는 혼자 여행하는 게 더 맞는 사람이구나, 하는 점이다. 그 때가 결코 안 좋았기 때문이 아니라, 나와 같은 타입의 사람에게는 혼자 여행하면서 얻게 되는 깨달음과 배움이 너무 커서 비록 과정이 고되더라도 여럿이 다니는 것보다는 이것이 조금 더 편하고 유익하다는 걸 깨달았다는 뜻이다. 사람마다 다를 것인데 나는 적어도 그러하다는 것이다.
오늘은 리장丽江 부근 하파설산 자락 호도협虎跳峡을 트레킹하려고 들어 왔다. 그리고 지금은 그 안에 있는 나시족 민박纳西客栈이다.
리장은 엊그제 1월 29일 밤에 따리에서 버스로 들어 왔다. 들어 오기 전 낮에 나시마마 게스트하우스에 전화를 걸어 방 상태를 확인하고 도착하기 30분 전에 다시 전화를 걸어 재확인한 뒤 픽업을 요청하고 들어 왔다.
들어 왔더니 어제 일기에 쓴 대로 정말 좋은 친구들이 방에 묵고 있었다. 어제는 다시 생각해보아도 환상적이었다. 이 친구들과 바이샤 구석 구석을 자전거로 돌아다니며 트레킹하고 완상했던 추억은 정말 잊지 못할 것 같다. 사진을 잔뜩 찍어 놓았다.
그리고 오늘 아침 리장 게스트하우스에서 8시 10분 쯤 눈을 뜨고 이리 저리 가이드북을 다시금 확인하며 오늘의 일정을 정한 결과, 결국 더 미루지 않고 오늘 여기 오기로 결정했다. 후티아오샤에 꼭 올 생각은 있었지만 언제, 어떻게 오는가 하는 것은 조금 가변적인데 방 친구들도 오늘 오후 다들 각자의 곳으로 돌아가고, 나 역시 리장구청 구경만 하기엔 조금 심심할 것도 같아서 서브 배낭을 싸서 나왔다. 와 보니 참 잘 한 것 같다. 하파설산은 정말 죽음이다. 그 동안 보았던 어떤 산과도 비교가 안된다. 쿤밍의 시산, 따리의 창산, 리장의 옥룡설산도 멋있었지만, 여긴 정말 꼭 오르고 싶게끔 생겼다. 내일 협곡 속으로 들어가면 더 새로운 느낌일 것 같다. 제대로 가면 4000미터 정상까지 직선코스로 구석구석 며칠이나 가야 하겠지만, 나는 1박 2일 코스로 결정했다. 여긴 3000미터 정도라고 하는데 아직은 별로 고산증상도 없고(약도 리장에 두고 와 버렸다), 감사할 따름이다.
트레킹을 끝내고 리장에 다시 돌아가서 혼자놀이를 좀 더 하다가 가려고 했던 운남기행의 마지막 코스가 바로 그 유명한 샹그릴라인데, 문제는 지금 중뎬,샹그릴라,더친, 그 여러 이름을 가진 그 동네가 너무 춥고 춘절기간엔 문 닫는 곳이 많다며 어제 오늘 다녀온 이들이 조금 비추하였다는 많다는 점이다. 추운 건 괜찮은데 그다지 볼만한 것이 거의 없다는 것은 조금 슬픈 일이다. 어차피 관광 자체가 목적이라기보단 그 곳 생활을 좀 더 보고 싶은 것인데, 이것 저것 다 포기하더라도 거기 사람들이 다들 춘절이라 어디로 돌아가 버렸을까봐 조금 걱정이다. 내 생각엔 거기로 다들 모여들 것 같은데, 춘절기간엔 따리나 리장이 워낙 성황이란다. 춘절기간에 놀러 오는 이들이 많아서 그런가보다. 여기 호도협에서는 리장보다 샹그릴라가 조금 더 가까워 곧장 하루나 이틀 정도 일정으로 구경만 하고 다시 리장에 내려올까 하고 고민하고는 있다. 일단 내일 트레킹을 끝낸 후에 중간 중간, 다녀 온 사람들에게 물어서 확정할 계획이다. 못 가더라도 후회는 없을 것 같다. 못 가더라도, 뭐랄까, 그냥, 사소한 여행의 과정이 참 재미가 있다.
이번 여행의 내 계획은 아주 단순했다. 어딜 많이 다니는 것은 별로 계획이 아니었다. 관람도 관광도 목적이 아니었다.
리코더도 불고, 책도 읽고, 사람들도 만나고, 사진도 찍고, 멍 때리며 커피도 마시고, 생각도 하고 일기도 쓰고, 하지만 오늘처럼 이렇게 조금 고된 트레킹도 해 보고, 무엇보다, 사람의 손이 별로 닿지 않은 자연 속에 마냥 들어가서 좋은 공기 속에 나를 가만히 놓아두는 것, 밤하늘의 별을 눈에 담고 사진에도 담는 것. 만든 세상보단 만들어진 세상 속에 들어가서 가장 아름다운 피조물인 자연과 사람을 만나는 일, 간단히 말해 자연과 사람들 속에 들어가는 것이었다.
그리고 내 계획은 거의 다 이루고 말았다. 남은 일주일동안 별 볼 일 없다고 해도 그다지 후회가 되지 않을 만큼 지난 시간동안 너무 충분히 감사하고 행복했다. 가져 간 리코더를 잃어 버렸다가 따리 여느 가게에서 다시 찾은 기쁨을 도무지 감출 수가 없어 결국 따리에서 만난 카프카의 주인장과 기타와 리코더 연주도 해 보았고(다시 따리에 돌아가서 재회할 예정이다), 리장 냇물 흐르는 돌다리 위에서 식당 주방장님과 나시 드럼을 치며 아리랑을 짬뽕한 반복적인 가락을 불러 대며 대낮에 함께 연주도 해 보았고, 중국 서점에서 너무 좋은 친구들과 함께 어린왕자 책도 같이 샀고, 분위기 좋은 카페에서 운남 커피와 인도식 나이차를 마시며 완전 환상적인 아침을 먹었고, 웬모 토림 속에 들어가서 사람의 손이 닿지 않은 초자연적인 원시토림 속에 날 놓아두기도 했다. 웬모 토림에 가려고 내가 쏟은 시간이 무려 3일, 정말 잘 한 일이었다. 운남 사람들조차 잘 알지 못하는 웬모와 추슝을 오가며 보았던 수많은 별들과, 엄청나게 큰 별똥별, 쬐그만한 별똥별도 잊을 수가 없을 것이고, 리장에서 찍은 별사진도 완전 환상적이었다. 사진으로만 보았던 리장구청도 참 멋졌는데 그 중에서도 리장의 시냇물은 참 특별하다. 거기서 빨래 하는 사람이 아직 있었고 바이샤에서부터 옥룡설산에서부터 연결된 것이 뭔가 특별함을 자아냈다. 밤의 리장 풍경은 또 새롭다. 하지만 리장은 사람이 너무 많고 물건도 너무 비싸고, 너무 관광지가 되어 버린 것 같아서 매력이 많이 반감되었다. 살고 싶기로 따지면 오히려 따리가 좀 더 좋은 것 같다. 그래서 리장을 기점으로 해서 다시 따리에 가려는 것이기도 하다.
아, 더 쓰고 싶고 하고 싶은 말이 많다.
짧은 시간동안 느낀 바가 많았는데, 무엇보다, 무엇이든 조금 더 열심히 공부해야 되겠다는 것, 중국어와 영어를 열심히 배워야 되겠다는 것, 지금처럼 이렇게 늘 감사해야 되겠다는 것, 작은 것에도 기쁨을 찾아내는 눈을 더 길러야 되겠다는 것,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는 일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되겠다는 것, 리코더 연습을 좀 더 해야 되겠다는 것 같은 것들이다.
더 감사한 것은, 아직도 1주일이나 더 남아 있다는 사실이다.
아, 이미 충분히 다 받았는데도 1주일이 더 남아 있다니, 다음 주일은 어떤 예배를 드릴 수 있게 될지, 내일의 트레킹(아마 그 동안 모든 것을 합쳐도 가장 고될 것으로 예상되는 일정)은 어떤 것들을 볼 수 있게 될지, 혹 샹그리라에 가거나 아니면 다시 리장과 따리에 돌아갔을 때 또 어떤 일들을 만날지, 그 모든 것들이 너무 기대되고 설렐 따름이다.
감사하다.
그냥, 모두 다 감사하다.
내가 살아 있어서,
아직 젊어서,
다치거나 위험한 일 당하지 않고 건강해서,
뭐든지 다 잘 먹어서,
좋은 사람들 많이 만났고 자연이 너무나 아름다워서,
그게 아니어도 감사하겠지만 이 감사의 이유를 굳이 찾아야만 한다면,
대충 그런 것들이 나는 참 감사하다.
2011년 1월 31일(월) 1월의 마지막날, 나는 그리던 운남 고원의 그림 같은 산자락, 깊은 산 속에 있다. 옹달샘도 옆에 들리는 듯 하다. 새벽에 토끼처럼 세수도 하고 물도 마시러 가 볼까.
어쨌거나 이제 말똥 쯤은 아무 것도 아니다. 흣흣.
너무 자유로운 하루다.
오솔길따라 오르락 내리락하며 보니 어쩌면 한국의 농촌과도 비슷한데, 조금 다른 점은 저 압도되는 하파설산의 위용과 완벽한 쪽빛의 하늘색감이 아닌가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