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 사소한 쉼표
  • 다시, 사소함으로
  • 길고 사소한, 발걸음
책/책이 나를 읽어 BookLog

사랑의 기술 / 에리히 프롬

by Minking 2012. 1. 10.

사랑의기술
카테고리 시/에세이 > 나라별 에세이
지은이 에리히 프롬 (문예출판사, 2006년)
상세보기




1. 발췌] 내가 책을 읽고

정말 읽어봄직하다. 포스트잇 붙여 놓은 발췌거리가 너무 많아서 앞부분만 발췌해서 옮긴다.

이 책은 독자들에게, 가장 능동적으로 자신의 퍼스낼리티 전체를 발달시켜 생산적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는 한, 아무리 사랑하려고 노력해도 실패하기 마련이며, 이웃을 사랑하는 능력이 없는 한, 또한 참된 겸손, 용기, 신념, 훈련이 없는 한, 개인적인 사랑도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을 깨우쳐주려고 한다. - 머리말 중에서


사랑에 대해 배울 필요가 없다는 태도의 배경이 되는 또 다른 전제는 사랑의 문제는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대상'의 문제라는 가정이다. 사랑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고, 사랑하거나 사랑받을 올바른 대상을 발견하기가 어려울 뿐이라고 사람들은 생각한다. 이 태도에는 근대 사회의 발전에 바탕을 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한 가지 이유는 '사랑의 대상'을 선택하는 데 있어서 20세기에 일어난 커다란 변화이다. - 15p


인간에게는 이성이 부여되었다. 인간은 자기 자신을 아는 생명이다. 인간은 자기 자신, 동포, 자신의 과거와 미래의 가능성을 알고 있다. 분리되어 있는 실재로서의 자기 자신에 대한 인식, 즉 자신의 생명이 덧없이 짧으며 원하지 않았는데도 태어났고 원하지 않아도 죽게 되며, 자신이 사랑하던 사람들보다 먼저 또는 그들이 자신보다 먼저 죽게 되리라는 사실의 인식, 자신의 고독과 자신의 분리에 대한 인식, 자연과 사회의 힘 앞에서의 무력감에 대한 인식, 이러한 모든 인식은 인간의 분리되어 흩어져 있는 실존을 견딜 수 없는 감옥으로 만든다.
인간은 동일한 문제, 곧 어떻게 분리 상태를 극복하는가, 어떻게 결합하는가, 어떻게 자신의 개체적 생명을 초월해서 합일을 찾아내는가 하는 문제에 직면하고 있다. 동굴 속 원시인에게도, 양 떼를 돌보는 유목민, 이집트 농부, 페니키아 상인, 로마 병사, 중세 수도사, 일본 사무라이,  현대 사무원이나 직공에게도 동일한 문제가 있다. 이 문제는 같은 근원, 즉 인간의 상황과 실존 조건으로부터 생기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많은 대답의 기록이 인간의 역사다. 종교와 철학의 역사는 이러한 대답의 역사이고 이러한 대답이 한정되는 동시에 다양화되는 역사다. - 26 p



2. 성찰] 책이 나를 읽고

이 책을 통해서 프롬은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갖고 있던 사랑에 대한 정의를 다시 쓰게 만들었다. 책이 쓰여지던 60여 년 전,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는 세계대전의 전후로 과연 '사랑이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하기에 오히려 부적합해보이던 시절이었다. 전 세계가 전체주의의 분위기에 휩싸여 있었고 강대국과 약소국 간의 힘의 균형도 상당히 무너져 있었다. 지엽적으로 각각의 나라 안에서는 대략 어떠했을까? 그래도 각각의 사람들은 나름대로 인간성을 상실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며 누군가를 사랑하며 사랑받으며 살아가고 있었으리라 믿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에 만연했던 사랑의 정의는 결코 이와 같은 행동적, 기술적 요소가 포함되지 않은 말 그대로의 '감정'으로 회자되기 일쑤였나보다. 프롬은 그런 사회 분위기에 일침을 놓는 책 한 권을 내어 놓았고 이 책은 두고 두고 사람들 사이에서 '사랑법'의 고전으로 사랑받고 있다. 나는 책을 읽고 나서야 그 이유를 깨달았다. 지나치게 어렵게 쓰지도 않았고 기본적으로 내가 갖고 있을 법한 사랑에 대한 오해를 많이 적어 놓았다. 그러나 결코, 남자와 여자가 상대방을 어떻게 사랑하게 '만들까'를 두고 그 방법을 제시해주는 종류의 책은 아니다. 그것은 이미 사랑을 하나의 '감정' 만으로 한정했을 때에나 일어날 수 있는 방법론이다.  

우리는 이미 머리로는, "그렇지, 사랑이란 결코 감정적 스파크가 아니라, 지속적인 행동의 실천과 의지가 요구되는 기술의 하나일 거야." 라고 생각하고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막상 사랑의 현실로 들어갔을 때엔 이와 조금 다를 때가 많다. 적어도 남녀 간의 사랑에서는 사랑의 감정만이 극대화되고 그래서 감정이 사그라들면 사랑도 끝이 났다,고 여기는 것이 좀 더 상식적인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고 말해준다. 나는 속이 시원했다. 내 마음 같아서 더 그랬을까? 성경에서 예수님이 걸어가신 길의 그 사랑이 이와 겹쳐져서 그랬을까? 내 믿음이 결코 틀리지 않았다는 걸 확인해서 그랬을까?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