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뜻하지 않게 대만 가족과 밥을 같이 먹었다. 우리반 교실을 쓰시는 영어선생님에게 밥을 한 끼 대접하고 싶어서 예전에 약속을 했던 했는데, 원래의 약속이던 날짜를 바꾸어 어제 저녁 만나기로 되었고 약속시간을 무려 1시간이나 넘겨 오시면서 귀여운 딸과 남편까지 동행해 온 것이었다. 나는 1시간동안 기다리면서 배가 약간 고팠던 것 말고는 괜찮았다. 책도 읽고 메뉴판도 공부했고 덕분에 새로운 단어도 알게 되어서 좋았다. 게다가 늦게 와서 미안하다며 맛있는 빵까지 사다 주시고 예쁜 딸 沛恩이라는 아이와 후덕하고 마음 좋은 남편까지 만나서 치진까지 다녀왔다. 터널을 통과해서 자동차로 치진에 다녀왔는데, 아, 나는 치진이 참 좋은데 좋은 사람과 같이 밤 치진의 등대를 올라갔다가 왔다. 혼자 가면 무서워서 올라가기 어려울 것 같은 곳이었는데 그 밤에 치진의 등대라니, 거기서 내려다 본 까오슝 해변의 야경은 정말, 환상이었다. 게다가 오래된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직접 만들어 파는 수제 아이스크림 세 종류를 먹었는데 별로 달지도 않고 역시나 환상이었다. 남편이 낚시를 좋아하신다고 했다. 우리 아버지도 낚시를 좋아하셨는데. 아빠가 조금 보고 싶다. 나도 낚시가 좋았다. 까오숑에서 낚시를 한 번 해 보고 싶다.
오늘은 쉬는 토요일이다. 그 동안은 토요한글반 수업 때문에 쉬지 못해서 몰랐는데, 쉬는 토요일이 이렇게 좋은 것인 줄 몰랐다. 일어나서 빨래를 좀 하고 간만에 방도 좀 둘러보고 여기 저기 꽂힌 책들도 가지런히 세우고 읽어달라고 밀려 있는 종이조각들도 치우고 정리하고, 지난 여행 자료들도 정리하고, 조은하 선생님과 정희, 우리 희귀 파충류 노미나, 주연언니에게 받은 편지를 예쁘게 파일에 끼운 후 다시 읽으며 내가 생각해도 참 예쁘게 웃었다. 감사했다. 조은하 선생님의 글씨가 예뻤고 써 준 노랫말이 아름다웠지만 선생님 마음이 느껴져서 나는 말할 수 없이 행복했고 정희 편지도 마찬가지였다. 정희는 언제나 나에게 든든한 멘토였고 친구였다. 미나의 편지는, 다시 읽으니 정말 감동적이었다. 내가 무엇인데 감히, 이렇게 아름다운 학생을 제자로 삼을 수 있는가? 우리 미나가 벌써 고등학생이 된다니. 손으로 쓴 편지를 받아 보고 싶다고 했는데 한 번도 쓰지 못한 것이 너무 미안하여 나는 여기서 편지를 써서 보냈다. 답장 써 달라고 주소를 얼마나 크게 또박또박 썼는데, 답이 안 온다. 주연 언니에게 받은 편지를 다시 읽으니 지난 넉 달의 시간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집을 구했던 것부터 시작해서 여기 저기 언니와 손잡고 구경다녔던 일, 리코더를 열심히 불고 있던 우리, 이렇게 좋은 사람이 학교 동료라는 것은 내게 너무 큰 축복이다. 더 많이 고마운 내 마음을 표현하지 못하는 것은 종종 잊어버려서이기도 하지만, 내가 보내는 감사의 말을 종종 여러 사람들은 과장된 말이나 행동 정도로 이해하는 것에 지레 겁을 먹은 탓이기도 하다. 이것 저것을 정리하고 나니 마음이 한층 정갈해졌다. 사실 어제는 거의 12시가 넘어 들어왔고 세수도 안 하고 자 버렸다. 그리고 오늘 아침 처음으로 늦게까지 잤다. 나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서 시계를 보니까 11시가 넘었다. 주일도 8시만 되면 거의 일어났기 때문에 오늘처럼 아침 늦게까지 자 본 것은 타이완 온 이후로 처음이다. 생각이 많고 행동거지가 빠르지 않은 나로서 그나마 하고 싶은 걸 다 하려면 아낄 수 있는 것은 시간뿐이다. 지난 번 '관계중심 시간경영'을 완독,정독한 이후로 시간 사용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리고 그 시간을 어떻게 가장 아름답게 써야 하는지를 많이 생각했다. 시대가 악하다고 하신 하나님, 그 하나님께서 시간을 계수하라고 하신 것은 나 자신을 위해서이기도 하겠지만 나아가 나를 둘러싼 이들, 내가 섬겨야 할 이들을 위해서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는 성경 외에 책을 그토록 정독해 본 적이 별로 없는 편이다. 휙휙 읽고 밑줄 쳐 두는 정도다. 그 책은 정독할 만했다.)
오늘도 맥도널드에 왔다. 요즘 중국어 강의를 다운 받아서 보고 있다. 안타깝지만 말이 잘 늘지 않는다. 먹고 싶은 걸 먹고 사고 길을 묻고 하는 것까지는 어떻게든 할 수 있겠는데, 그 다음이 문제다. 목 상태 때문에 교사가 된 이후로 남들에게 말하는 걸 그리 좋아하지 않고 듣는 편이 되었던 내 성향을 조금 바꾸어야 할 일이다. 수업 이후엔 종종 입을 닫고 살았던 한국에서의 삶과 달리 여기선 말을 하지 않으면 도무지 중국어를 쓸 일이 없어서, 의지적으로 그런 내 전후 상황을 바꾸어야 된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하고 싶은 말을 다 할 수 없다는 답답함을 요즘 많이 느끼고 있다. 그래도 좋다. 마음이 총총총 뛰고 설렌다. 어설프고 어이없게 말하고 있지만 중국어가 조금 더 재미있어지고 있다. 생각보다 타이완에 와서 중국어 공부를 많이 못했다. 사실 영어보다 이 언어에 재미를 퍽 느끼지 못한 것도 있었지만, 그 동안 한국에서 해 보지 못한 나만의 시간을 가져 보느라 정말 재미가 있었다. 최선을 다 해 시에 몰두했고 사랑했고 실망했다. 그리고 뜻하지 않게 바짝 엎드려 나를 비운 시간이 되었던 것 같다. 그래서 나는 더 이상 쉼이 필요 없게 느껴진다. 더 이상의 여행도 그다지 필요없게 느껴진다. 지난 넉 달동안 나름대로 혼자 이 곳 저 곳 여행을 많이 했다. 동네 구경도 충분히 했다. 지난 시간 물론 적응하느라 어려움은 있었겠고 외로움과 그리움으로 눈물 지었던 시간들도 있었지만 나는 그보다 더 많은 것들로부터 그리고 좋은 이들로부터도 많이 위로받았고 내가 받은 은혜는 너무도 충분하다. 이제 어떻게 이전보다 좀 더 아름답게, 몸과 마음 더욱 건강하게 살아볼까를 생각하는 중이다. 맥도널드 내 지정석에서 바라보는 일몰의 하늘이 참 아름답다. 눈이 즐겁다.
올해 서른이 되었다. 과장하는 말이 아니라 나는 정말 서른이 되고 싶었다. 내가 무엇을 할 때마다, 내가 서른이 아직 되지 않았기 때문에 어딘가 조금 어설픈 것만 같고 떳떳하지 않게 느꼈던 내 자격지심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된 것 같아서 나는 서른인 것이 참 좋다. 꽉 찬 나이인 것이 좋다. 뭘 해도 조금 더 어른다운 나이가 된 것 같아서 좋다. 그리고 역시나 부담도 있다. 서른에 알맞은 행동, 철들지 않아야 할 부분도 있겠지만 철 들어야 할 부분에 대해서도 앞으로 한 번 생각해 봐야 되겠다. 모자란 내 행동거지에 대해서도 더 생각해 봐야 되겠다.
내 삶 구석 구석에서 하나님 당신과 동행하는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하나님이 아니면 나는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다시 한 번 더 기억해야 되겠다. 진정 거시적으로 생각하고 미시적으로 살아야 되겠다. 살아지는 것이 아니라 살아야 되겠다. 살아 있어야, 되겠다.
2011년 1월 8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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