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드디어 여기에 왔다. 여러 책에서도 소개했듯 샹그리라는 어차피 상상 속의 나라다. 10년 전까지만 해도 아주 작은 시골에 불과했던 여기를 중국 정부는 멋지게 큰 도시로 부활시켰고 중덴(中甸)이라고 부르는 곳의 이름을 굳이 샹그리라(香格里拉)로 바꾸어 영국 소설 속 shangrila를 중국의 한 지명으로 만들어 놓았다. 게다가 이 겨울은 대부분 문을 닫은 곳이 많고 춘절을 생각할 때 여기까지 오는 과정도 만만찮게 불편하여, 어제까지만 해도 굳이 여기를 와야만 하나 고민에 고민을 했건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길 선택한 단 하나의 이유는, 그나마 이 겨울에 정말로 동티벳의 풍경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 유명한 송찬림사도 들를 수 있다는 것, 게다가 오늘 후티아시아 트레킹을 끝내고 내려오는 길에 정말 때마침 말도 안되도록 딱 맞게 여행사 차를 값싸게 얻어타게 된 것이다. 샹그리라 방면으로 가는 미니 버스를 급히 손 흔들어 세운 뒤 샹그리라로 가는지 안 가는지를 물어서 가격을 대충 정하고 얻어 탄 것인데 이건 정말 특별한 행운이 아닐 수가 없다. 가면 갈수록 약간 철면피의 행동을 조금씩 능숙하게 하고 있다. 시외버스를 타고 가더라도 여기서 최소 30원은 줘야 되는데 문제는 춘절기간을 감안할 때 이미 기사님들도 집에 가서 버스가 없다는 것이고, 그냥 리장으로 돌아가는 것은 별 어렵지 않지만 여기까지 와서 샹그리라를 하루라도 들를 수 있는 기회를 놓친다는 것이 영 불편하던 차였는데, 하얀색 행운의 차를 만나게 된 것이다. 알고 보니 여행사에서 운행하는 미니 버스였는데 더 고마운 것은 내일 다시 리장으로 돌아간다는 것. 덕분에 한 60원 정도(아직 값을 정하지 않았는데 그 정도가 아닐까 예상. 만약 더 비싸게 부르면 그냥 한 3일 여기 묵는 것도 나쁘지 않겠음)에 다시 샹그리라에서 리장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된 것이다.
어쨌거나 여러 모로, 참 놀라운 일정으로 예상치 않게 오게 되었다.
오늘 후티아오시아는 정말 놀라운 풍경을 엄청 많이 펼쳐 주었다. 그리고 운남에 와서 두 번째로 울었다. 첫번째는 토림을 보았을 때였는데 그 때 토림을 볼 때와는 또 다른 압도가 있었다. 3500m가 넘는 고도에서 더 높은 5000m 이상의 옥룡설산을 바라보는 압도감. 그 아래로 흐르는 물줄기. 그 모든 것이 진정 완벽하게 말문을 닫게 했다. 정말 어제 오늘 나는 다시금 자연에 압도되었고 그 자연을 만드신 창조주를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도무지 이런 게 어디서 나왔을까, 도대체 이런 건 누가 만들 수 있단 말인가, 하는 생각 밖에 들지 않았다. 무엇보다, 그 울창하고 깊고 드높은 산 중을 혼자 트레킹하는 중 문득 생각나던 찬양이 '성령이 오셨네'였는데, 찬양의 가사 한 줄 한 줄이 너무도 나의 마음 같았고 그저 감사해서, 이것 저것 할 것 없이 기쁨의 눈물이 막 났다.
리장이나 따리의 그 화려하고도 고적한 풍경과는 또 다른 풍경이었다. 사실 내가 더 보고 싶었던 것은 이런 자연이었다. 결국 오늘 트레킹을 마치며 정말 내가 원했던 모든 것을 다 이루었다. 심지어 중간에는 양치기 할아버지를 만났다. 참 소박하게 웃으며 사진을 같이 찍자 하셨다. 나는 너무 감사해서 기쁘게 셀카를 같이 찍었다. 할아버지가 '커이커이~'하는 목소리로 양을 부르자 놀랍게도 양들이 몽땅 할아버지를 쳐다 보았다. 그리고 다윗 생각이 났다. 작은 목동이었던 다윗이 저 할아버지처럼 양들을 부르고 양들을 지켰을 생각을 하니 새삼 성경이 그림처럼 펼쳐졌다. 양은 목자의 음성을 알아 듣는다는 말씀이 생각났다. 나는 진정 목자되신 당신의 양이 되고 싶었다.
그리고, 덤처럼 나는 샹그리라까지 왔다.
운남에 넘어 와 보니 따리나 운남도 충분히 며칠 푹 쉬기 괜찮고 후티아오샤에서 이미 내 꿈을 이루었기에 샹그리라는 그다지 내 계획이 아니었는데, 이토록 놀라운 일정으로 오가게 될 줄은 생각지 못했다.
비록, 오늘 산중에서 발을 삐어서 몸 상태가 썩 좋지 않고, 내 1호 배낭이 리장 게스트하우스에 박혀 있어 대부분의 살림살이가 없이 그저 최소한의 옷과 상태로 오늘을 버텨야 한다는 안타까움이 있긴 하나, 그러면 어떠한가! 너무 부족한 하루이지만, 하나님 내게 주신 충분한 덤이려니 생각하며 내일 하루 천천히 숨쉬며 샹그리라를 둘러보려고 한다. 안타깝게도 꽤 비싼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야 하는 송찬림사에 들러, 라마승들께 인사도 드리고 혹 이 길 저 길 중에 만나게 될 그 분들과 간단히 신년인사도 할 수 있으면 좋겠다. (중국은 이 엄청난 입장료가 좀 문제다. 중국 물가를 고려할 때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가격대가 아닐 수 없다.)
그리스도인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아직도 나는 하나님께 묻는다. 매일 묻는 게 일상다반사지만, 특별히 타이완에 와서 그 물음이 더 넓어지고 더 깊어진다. 한국에 돌아갈 때가 되면 적어도 2년 전보다 하나님이 어디 계신가, 하는 물음에 대한 답이 조금 더 분명해졌으면 좋겠다. 적어도 지금 내게 주신 답은 무엇인가? 그래, 지금 그 창조주 하나님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만질 수도 없다. 당장 내 귀에 대고 당신의 음성을 크게 들려 주시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말씀 속에, 매일의 삶 속에, 당신이 만든 창조물 속에- 저 놀라운 자연과 사람들 속에 - 이미 당신의 형상과 마음이 머물러 있다. 당신을 만나는 길이 왜 오직 예수 그리스도여야만 하는가? 저 아름다운 자연을 통해 당신과 소통할 수 없는가? 사람들을 통해 당신과 소통할 수는 없는가? 있다. 가능할 수도 있다. 하지만 필요충분조건이 아니다. 안타깝게도 그것으로는 충분치 않다. 만약 그것으로 충분했다면 굳이 당신이 친히 죽을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굳이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야 될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왜 인간을 이토록 불완전하게 만드셨는가? 왜 죄를 지을 수 있는 가능성을 남겨 두셨는가? 왜 당신을 만나지 않고도 그다지 불편을 느끼지 않는 이들이 있을 수 있으며(이전에 내가 그러했듯), 아무렇지 않게, 때론 오히려 더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이토록 아름다운 자연을 만드셨는가? 그 답을 나는 아직 잘 모르겠다. 당신을 만나면 꼭 확인하고 싶은 답 중 하나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창조자와 피조물의 관계는 명백하다는 것이다. 그림 하나를 그리더라도 그 그림을 창조한 화가는 언제든 그 그림을 마음껏 꾸밀 수 있다. 이 세상이 창조되었고 창조자가 있다면 피조물과 창조자의 관계는 어쩔 수 없이 명백하게 그려져야 한다. 그런데 그 창조자가 더더욱 그 피조물된 인간을 사랑했다면 문제는 조금 더 복잡해진다. 사랑하는 이를 위해 우리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 부모님이 날 사랑하는 것만을 생각해 보아도 그러하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은 그 사랑의 의미로 해석되어야만 한다. 당신의 죽음이 결코 헛된 죽음이 되지 않는 것은, 그래서 더 당신을 따라 살기 위해 결단하게끔 하는 것은, 성경 전체와 창조과정 전체를 관통하는 흐름이 바로 '사랑'이기 때문이다. 그 열쇠가 없으면, 성경은 이스라엘 역사서에 불과하고, 카톨릭이든 기독교든 그저 내세를 갈구하는 서양종교에 불과하다. 기독교가 종교로 전락하는 순간, 예배는 형식적인 행위로 전락할 가능성이 많아지고 말과 삶 역시 분리되기 쉬워진다. 그래서 무엇인가? 내가 무슨 말을 더 보탤 수 있는가? 다시금 겸손하게 그저, 당신을 만나고 싶다고 고백하는 것 말고는, 당신과 좀 더 친하게 지내고 싶다고 웃으며 샤바샤바하는 것 말고는 달리 할 말이 없다. 창조물인 그림이 창조자인 화가를 좌지우지할 수는 없다. 다만 흐릿하게나마 당신의 뜻을 상상해 볼 따름이다.
하나님은 지금 어디 계신가? 성령으로 오셔서 지금 나와 함께 계신다. 이미 하나님은 내 안에 계신다. 당신을 더 깊이 사랑하고 당신과 더 깊이 친해질 수록 당신이 이미 나와 함께 하신다. 나는 여행 중 더 하나님을 깊게 만나고 있고, 이미 그것으로 충분히 감사하다. 오늘 그 짧은 찬양 중 내가 만난 후티아오샤 계곡 속에 당신은 이미 있었다. 나는 후티아오샤 속에서 당신을 만날 수 있었다. 오늘 만난 목동 할아버지를 통해, 그 소박한 웃음 속에서 당신의 웃음을 보았다. 내게 길을 일러 준 작은 소녀의 걸음 속에서 당신을 만났다. 그리고, 여기 유스호스텔로 올 수 있게 되기까지의 일정을 떠올리며, 나는 예상치 못하게 또 당신을 만났다.
오늘 후티아오샤와 샹그리라의 일정은 이로써 충분하다.
그리고 오늘의 밤은 어제와 또 다른 기쁨과 감사로 충만하다.
- 춘절의 시작. 샹그리라 유스호스텔에서
2011년 2월 1일 (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길 선택한 단 하나의 이유는, 그나마 이 겨울에 정말로 동티벳의 풍경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 유명한 송찬림사도 들를 수 있다는 것, 게다가 오늘 후티아시아 트레킹을 끝내고 내려오는 길에 정말 때마침 말도 안되도록 딱 맞게 여행사 차를 값싸게 얻어타게 된 것이다. 샹그리라 방면으로 가는 미니 버스를 급히 손 흔들어 세운 뒤 샹그리라로 가는지 안 가는지를 물어서 가격을 대충 정하고 얻어 탄 것인데 이건 정말 특별한 행운이 아닐 수가 없다. 가면 갈수록 약간 철면피의 행동을 조금씩 능숙하게 하고 있다. 시외버스를 타고 가더라도 여기서 최소 30원은 줘야 되는데 문제는 춘절기간을 감안할 때 이미 기사님들도 집에 가서 버스가 없다는 것이고, 그냥 리장으로 돌아가는 것은 별 어렵지 않지만 여기까지 와서 샹그리라를 하루라도 들를 수 있는 기회를 놓친다는 것이 영 불편하던 차였는데, 하얀색 행운의 차를 만나게 된 것이다. 알고 보니 여행사에서 운행하는 미니 버스였는데 더 고마운 것은 내일 다시 리장으로 돌아간다는 것. 덕분에 한 60원 정도(아직 값을 정하지 않았는데 그 정도가 아닐까 예상. 만약 더 비싸게 부르면 그냥 한 3일 여기 묵는 것도 나쁘지 않겠음)에 다시 샹그리라에서 리장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된 것이다.
어쨌거나 여러 모로, 참 놀라운 일정으로 예상치 않게 오게 되었다.
오늘 후티아오시아는 정말 놀라운 풍경을 엄청 많이 펼쳐 주었다. 그리고 운남에 와서 두 번째로 울었다. 첫번째는 토림을 보았을 때였는데 그 때 토림을 볼 때와는 또 다른 압도가 있었다. 3500m가 넘는 고도에서 더 높은 5000m 이상의 옥룡설산을 바라보는 압도감. 그 아래로 흐르는 물줄기. 그 모든 것이 진정 완벽하게 말문을 닫게 했다. 정말 어제 오늘 나는 다시금 자연에 압도되었고 그 자연을 만드신 창조주를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도무지 이런 게 어디서 나왔을까, 도대체 이런 건 누가 만들 수 있단 말인가, 하는 생각 밖에 들지 않았다. 무엇보다, 그 울창하고 깊고 드높은 산 중을 혼자 트레킹하는 중 문득 생각나던 찬양이 '성령이 오셨네'였는데, 찬양의 가사 한 줄 한 줄이 너무도 나의 마음 같았고 그저 감사해서, 이것 저것 할 것 없이 기쁨의 눈물이 막 났다.
리장이나 따리의 그 화려하고도 고적한 풍경과는 또 다른 풍경이었다. 사실 내가 더 보고 싶었던 것은 이런 자연이었다. 결국 오늘 트레킹을 마치며 정말 내가 원했던 모든 것을 다 이루었다. 심지어 중간에는 양치기 할아버지를 만났다. 참 소박하게 웃으며 사진을 같이 찍자 하셨다. 나는 너무 감사해서 기쁘게 셀카를 같이 찍었다. 할아버지가 '커이커이~'하는 목소리로 양을 부르자 놀랍게도 양들이 몽땅 할아버지를 쳐다 보았다. 그리고 다윗 생각이 났다. 작은 목동이었던 다윗이 저 할아버지처럼 양들을 부르고 양들을 지켰을 생각을 하니 새삼 성경이 그림처럼 펼쳐졌다. 양은 목자의 음성을 알아 듣는다는 말씀이 생각났다. 나는 진정 목자되신 당신의 양이 되고 싶었다.
그리고, 덤처럼 나는 샹그리라까지 왔다.
운남에 넘어 와 보니 따리나 운남도 충분히 며칠 푹 쉬기 괜찮고 후티아오샤에서 이미 내 꿈을 이루었기에 샹그리라는 그다지 내 계획이 아니었는데, 이토록 놀라운 일정으로 오가게 될 줄은 생각지 못했다.
비록, 오늘 산중에서 발을 삐어서 몸 상태가 썩 좋지 않고, 내 1호 배낭이 리장 게스트하우스에 박혀 있어 대부분의 살림살이가 없이 그저 최소한의 옷과 상태로 오늘을 버텨야 한다는 안타까움이 있긴 하나, 그러면 어떠한가! 너무 부족한 하루이지만, 하나님 내게 주신 충분한 덤이려니 생각하며 내일 하루 천천히 숨쉬며 샹그리라를 둘러보려고 한다. 안타깝게도 꽤 비싼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야 하는 송찬림사에 들러, 라마승들께 인사도 드리고 혹 이 길 저 길 중에 만나게 될 그 분들과 간단히 신년인사도 할 수 있으면 좋겠다. (중국은 이 엄청난 입장료가 좀 문제다. 중국 물가를 고려할 때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가격대가 아닐 수 없다.)
그리스도인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아직도 나는 하나님께 묻는다. 매일 묻는 게 일상다반사지만, 특별히 타이완에 와서 그 물음이 더 넓어지고 더 깊어진다. 한국에 돌아갈 때가 되면 적어도 2년 전보다 하나님이 어디 계신가, 하는 물음에 대한 답이 조금 더 분명해졌으면 좋겠다. 적어도 지금 내게 주신 답은 무엇인가? 그래, 지금 그 창조주 하나님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만질 수도 없다. 당장 내 귀에 대고 당신의 음성을 크게 들려 주시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말씀 속에, 매일의 삶 속에, 당신이 만든 창조물 속에- 저 놀라운 자연과 사람들 속에 - 이미 당신의 형상과 마음이 머물러 있다. 당신을 만나는 길이 왜 오직 예수 그리스도여야만 하는가? 저 아름다운 자연을 통해 당신과 소통할 수 없는가? 사람들을 통해 당신과 소통할 수는 없는가? 있다. 가능할 수도 있다. 하지만 필요충분조건이 아니다. 안타깝게도 그것으로는 충분치 않다. 만약 그것으로 충분했다면 굳이 당신이 친히 죽을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굳이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야 될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왜 인간을 이토록 불완전하게 만드셨는가? 왜 죄를 지을 수 있는 가능성을 남겨 두셨는가? 왜 당신을 만나지 않고도 그다지 불편을 느끼지 않는 이들이 있을 수 있으며(이전에 내가 그러했듯), 아무렇지 않게, 때론 오히려 더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이토록 아름다운 자연을 만드셨는가? 그 답을 나는 아직 잘 모르겠다. 당신을 만나면 꼭 확인하고 싶은 답 중 하나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창조자와 피조물의 관계는 명백하다는 것이다. 그림 하나를 그리더라도 그 그림을 창조한 화가는 언제든 그 그림을 마음껏 꾸밀 수 있다. 이 세상이 창조되었고 창조자가 있다면 피조물과 창조자의 관계는 어쩔 수 없이 명백하게 그려져야 한다. 그런데 그 창조자가 더더욱 그 피조물된 인간을 사랑했다면 문제는 조금 더 복잡해진다. 사랑하는 이를 위해 우리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 부모님이 날 사랑하는 것만을 생각해 보아도 그러하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은 그 사랑의 의미로 해석되어야만 한다. 당신의 죽음이 결코 헛된 죽음이 되지 않는 것은, 그래서 더 당신을 따라 살기 위해 결단하게끔 하는 것은, 성경 전체와 창조과정 전체를 관통하는 흐름이 바로 '사랑'이기 때문이다. 그 열쇠가 없으면, 성경은 이스라엘 역사서에 불과하고, 카톨릭이든 기독교든 그저 내세를 갈구하는 서양종교에 불과하다. 기독교가 종교로 전락하는 순간, 예배는 형식적인 행위로 전락할 가능성이 많아지고 말과 삶 역시 분리되기 쉬워진다. 그래서 무엇인가? 내가 무슨 말을 더 보탤 수 있는가? 다시금 겸손하게 그저, 당신을 만나고 싶다고 고백하는 것 말고는, 당신과 좀 더 친하게 지내고 싶다고 웃으며 샤바샤바하는 것 말고는 달리 할 말이 없다. 창조물인 그림이 창조자인 화가를 좌지우지할 수는 없다. 다만 흐릿하게나마 당신의 뜻을 상상해 볼 따름이다.
하나님은 지금 어디 계신가? 성령으로 오셔서 지금 나와 함께 계신다. 이미 하나님은 내 안에 계신다. 당신을 더 깊이 사랑하고 당신과 더 깊이 친해질 수록 당신이 이미 나와 함께 하신다. 나는 여행 중 더 하나님을 깊게 만나고 있고, 이미 그것으로 충분히 감사하다. 오늘 그 짧은 찬양 중 내가 만난 후티아오샤 계곡 속에 당신은 이미 있었다. 나는 후티아오샤 속에서 당신을 만날 수 있었다. 오늘 만난 목동 할아버지를 통해, 그 소박한 웃음 속에서 당신의 웃음을 보았다. 내게 길을 일러 준 작은 소녀의 걸음 속에서 당신을 만났다. 그리고, 여기 유스호스텔로 올 수 있게 되기까지의 일정을 떠올리며, 나는 예상치 못하게 또 당신을 만났다.
오늘 후티아오샤와 샹그리라의 일정은 이로써 충분하다.
그리고 오늘의 밤은 어제와 또 다른 기쁨과 감사로 충만하다.
- 춘절의 시작. 샹그리라 유스호스텔에서
2011년 2월 1일 (화)
'雲南 운남걷다_2011_20days > Shangrila 샹그리라'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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