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雲南 운남걷다_2011_20days

집에 다시 왔다, 그러나

by Minking 2011. 2. 10.

그러나#1,  

어느 순간, 그러나 나는 집에 오고 싶었다


돌아왔다. 지난 2008년에 이어, 또 다시 한 번 지독한 중국의 춘절에 중국을 다시 갔다 왔다. 지난 번에 갔을 때는 입장권 사기를 당했고 경찰에게 돌려받은 50원권이 위조 지폐였고, 6시간동안 단 10cm도 움직일 수 없는 상태로 서서 귀향하는 기차 속에 있기도 했다. 영하 35도를 오가는 하얼빈에서 아이스크림을 먹는 하얼빈런들에게 완전 놀라기도 했다. 이번에는 그보다 훨씬 편안했다. 훨씬 안락했다. 약간의 도난은 있었지만 건강하고 안전하게 타이완에 다시 들어왔다. 모든 게 감사하다. 타이베이에 들어 오니 마치 집에 온 것만 같다. 그리고 타이삐 430원짜리 값싼 유버스로 참으로 편안하게 까오슝 시내로 진입하는 순간, 놀랍도록 그 거리가 다 내 동네처럼, 내 거리처럼 따뜻해 보였다. 집 앞에서 드디어 20일 만에 보랏빛 내 오토바이를 보는 순간, '잘 있었엉?' 하는 코맹맹이 소리가 저절로 나오며 먼지 묻은 궁둥이를 살짝 살짝 쓰다듬어 주었다. 집 열쇠를 찾아내어 문을 따고 들어와서 내 집을 확인하니, 아 진짜 내 집이다. 생각보다 내 집, 괜찮네!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낯설게 보기가 가끔 이렇게 필요한가보다. 작은 것들에 다시 감사하게 되는 것, 여행이 주는 매력이 이런 것이구나 생각했다. 그리고 지극히 개인적으로 느낀 중국여행의 매력은 중국 여행이 끝나갈 무렵 진지하게 어서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진다는 것이고 어느 순간 모든 걸 다 잊고 다시 슬그머니 또 가고 싶어진다는 것에 있다고 생각했다. 개인적으로 이번엔 여행의 끝물이 들 즈음 도미토리에서 멀쩡하게 걸린 내 세면도구를 도난당한 날, 그리고 운남의 가장 큰 도시인 쿤밍 시내의 가장 큰 슈퍼마켓인 까르푸 화장실의 위생상태를 확인하던 날, 마지막으로 쿤밍 공항 관리위원이 공항 안 금연스티커 앞에서 자연스레 담배를 피워 물며 연기를 날리는 순간 나도 모르게 빨리 타이완으로 가고 싶어졌다. (나는 화장실을 너무 사랑하고 담배연기를 너무 미워한다) 특히나 까르푸 화장실의 경우는 시골의 문 없는 화장실에서 2마오를 주고 볼 일을 볼 때와는 다른 느낌이었다. 춘절이라 어디든 사람은 엄청나게 몰렸고 그냥 아주 평범한 시내 버스를 탈 때도 압사되도록 사람이 많았는데 그 때마다 줄의 개념은 늘 사라지고 새치기는 당연한 것이었고 나 역시 밀리지 않겠다며 새치기족이 되어 가고 있었다. 내 배낭이 점점 불어가는 순간부터 그 새치기가 조금 지겨워졌고 다시금 3년 전 중국의 수도 베이징 거리에서 만난 수많은 담배꽁초와 가래침이 같이 떠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베이징 거리를 돌아다니며 정말 5초에 한 번 꼴로 들리는 가래침 뱉는 소리와 숨막히는 담배연기가 갑자기 오버랩되는데, 다른 건 몰라도 담배와 가래침이 합작이 된 종합선물세트를, 그것도 베이징 올림픽이 열리기 직전 중국의 수도 한 복판에서 매순간 받아드는 것이 얼마나 지겨웠던지, ' 내가 다시 중국에 오나 봐라' 했던 그 때의 다짐이 떠오르면서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래, 근데 뭔가 그리워서 또 온 것이다. 어쨌거나 그것은 따리 창산 자락에서 화장실을 찾는 나에게 산 속에서 마음껏 해결하라는 아저씨의 자유로운 충고와는 또 다른 종류의 부자유였고, 후티아오샤 자락에서 만난 나시커쟌과 차마커쟌의 소박하고 편안한 인심과는 또 다른 불편함이었다. 나도 제법 머리 떡지게 하고 다닌 날도 있으니 사람들의 입냄새나 떡진 머리는 사실 아무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역시나 나는 일단 담배가 영 안 맞는 것이다. 20명 남짓 타기 어려운 미니 버스 안에서 피워대는 담배연기나 열차 안에서 수시로 들어오는 간접흡연에는 도무지 내내 적응하기가 어려웠다.


그러나#2 ,

그러나 그리운 하늘


흐흐, 그러면 어떠한가! 어쨌거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나는 리장과 따리의 놀랍도록 푸른 하늘이 그립고 거기서 본 사람들과 산자락이 그리워진다.
건네는 담배 한 가치를 피워 무는 일보다 거절하는 게 더 어려울 정도로 리장과 따리에는 히피들이 많았고 조금 더 생산적인 히피 친구를 만났던 것도 내겐 행복한 경험이었다. 길거리 음식을 아무렇게나, 시간 개념없이 아무 때나 먹는 습관이 들어버린 것은 조금 안타까운 일이지만, 이번 여행을 통해 나는 음식이라면 정말 가리지 않고 잘 먹을 수 있다는 것을 다시금 확인했다. 이제는 더 확인 안 해도 되겠다. 하하하.

다시 돌아보아도 운남은 매력적인 곳이었다. 비행기와 비자값만 아니라면 다시 가라고 해도 가고 싶은 곳이다. 다음에 중국을 가게 되면 시솽반나 쪽, 오래된 차 나무가 많은 더 아래쪽으로 해서 라오스와 캄보디아, 베트남을 한꺼번에 돌아보고 싶다. 한 2달 정도면 꽤 마음 놓고 다녀 올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런 시간이 잘 날 수 있을지. 어쨌거나 참으로 이번 18일 남짓동안 나는 혼자 여행하는 즐거움을 마음껏 누렸다. 사람들을 많이 만났고 그 속으로 들어가는 즐거움이 뭔지 조금 알게 되었고, 자연 속에 가만히 앉아 있는 기쁨을 한껏 누릴 수 있었다. 타이완에 돌아와 복잡한 타이뻬이 시내를 거닐다가 '여기는 에너지가 많을 때 와야 되는 곳이구나' 생각했다. 중국 여행이 끝나고 하루를 타이베이에서 보내는데 도무지 복잡한 타이베이가 적응되지 않는 것이었다. 쏟아지던 별이 다시 그리워지면서 조용하고 한적한 자연 속에 들어가고 싶어서 몸이 근질거렸다. 그래서 더더욱 한적하고 조용한 내 집, 까오슝이 그리워졌다.

기회가 된다면 이번에는 유럽을 조금 돌아보고 싶다. 여기 저기의 화려한 쇼핑이나 무미건조한 발도장 찍기 말고, 이번엔 정말 유럽의 문화 속으로 한 번 들어가 보고 싶다.
특별히 이번에는 독일이 궁금해졌다. 일본인 여행 부부가 소개해 준 멋진 남아메리카 여행지들도 가고 싶어졌고, 덕령이 사는 스웨덴과 핀란드, 노르웨이 쪽 스칸디나비아의 자연은 또한 언제나 내 관심 1호다.


그러나#3,

극단적 상상, 그러나 결국엔 감사

집에 돌아오니 문 앞에 '좋은교사' 잡지 2월호가 도착해 있다. 책갈피부터 해서 처음 목차부터 차근 차근 읽고, 내 시도 읽는데 문득 그 모든 게 얼마나 새롭고 감사한가? 내가 작년 이 맘 때 이런 시를 썼구나 싶어서 새삼 날 돌아보게 되었고, 다음 주 다시 만날 우리 꼬마들을 생각하니 기분이 이상해졌다. 그래, 난 한국이 아니라 타이완에 있는 거로구나 싶어서 마음이 야릇해지는 것이, 집처럼 편안하게 느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여긴 내게 낯선 나라구나, 싶었다.
어쨌거나 내 몸 살 한 덩어리처럼 딱 붙어 정든 '복대'를 풀고 놓고 다시 일상에 복귀하니 모든 게 새롭고 다시금 감사하다. 살아 있어서, 일기도 쓰고 책도 읽고 생각도 하고 웃고 사람들도 만나고 밥도 먹고 살도 좀 찌고 가르치고 배우고, 그렇게 그 모든 사소한 일상 속에서 다시 나의 주님을 만난다. 강아지똥 속에서도 주님을 만나는 수준 정도가 되어야 살아 있는 수업도 하고 진짜 살아 있는 사람이 될 텐데, 아, 아직도 나는 멀었다. 정신 바짝 차리고 살아야 되겠다.

7년 전 내가 썼던 일기의 한 구절이 문득 떠오른다.
"극단적인 상상이겠지만, 날 만드신 분이 당장에라도 내 심장을 5분만 멈추시면 나는 단 5분 뒤에 분명 이처럼 살아서 숨을 쉴 수가 없습니다."
내가 살아 있다는 것에 감사하다는 것은, 그 극단적인 가정에 대한 대답이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매 순간 '낯설게 살기' 위해, '깨어 있기' 위해 하는 나의 또 다른 선택이기도 하다. 


그러나#4,

복귀, 그러나 불필요한 이분법: 비밀의 화원 속으로 들어가는 일

빨래를 해야 되겠다 싶어 옷을 모두 벗어 마루에 놓아 두었다. 가만 보니 지난 여행 내 분신같았던 오리털 파카가 검정색이라 참 다행이었다. 무엇보다 내 머리가 검정색이라서 더 다행이었다. 그래서 말인데, 그렇게 묻은 흙과 먼지는 털고 빨면 그만이지만, 더러워지고 나쁘게 물든 마음은 털고 빤다고 쉽게 해결되지 않는다. 여행으로도, 마음다스리기로도 쉽게 해결되지 않는다.
여행을 통해 새로워진 게 있는가 하면 여전히 그대로인 것도 있다. 특별히 마음은 그대로인 부분이 있기도 하고 새로워진 부분이 있기도 하다. 이 마음이 사람 눈에 보이지 않아서 참 다행이다. 검정색도 흰색도 노란색도 아니고 보이지 않는 색이어서 참 다행이다. 왜, 엄연히 있는 것임에도 눈에 보이지 않을 수 있는지, 왜 하나님은 마음을 눈에 보이지 않게 만들어 놓으셨는지 알 것도 같다.
어쩄거나 여행을 통해 정화된 마음과 눈으로 다시 일상에 복귀하는 일이 참 설렌다. 하지만 그 역시 완전하지 않다. '비밀의 화원'처럼 내 주님과 가꾸는 비밀스런 화원이 늘 잘 가꾸어졌으면 좋겠다. 여행 속에서도 일상 속에서도, 당신과 나만이 아는 우리끼리의 비밀의 화원이 잘 가꿔져야 되겠다. 아니 그 화원 안에서는 일상과 여행이라는 이분법적인 생각이 오히려 더 불편하고 거추장스럽기만 하다. 당신과 나의 화원 안에 마냥 거닐면 나는 그 속의 하늘이 늘 아름답고 매 순간이 자유로우며 행복하다. 그걸 발견하지 못하는 나에게, 그 화원을 잘 가꾸지 못하는 나에게 조금 문제가 있다면 있겠지만. 자유가 뭘까? 어쩌면 일반적으로 가장 부자유하고 불행해 보이는 순간에도 가장 자유하고 기뻐할 수 있다는 것, 그게 진짜 자유로움이 아닌가 생각했다.

혼자 떠난 첫 배낭여행지 운남에서, 자연과 사람과, 또한 나를 통해, 주님을 더 묵상할 수 있게 하신 것에 대해 나는 다시금 감사하다.
형식적인 그리스도인이 아니라 가장 실제적인 삶 속에서, 정말 살아 있는 그리스도인이 되고 싶다는 내 열망이 다시금 불일듯 일어났으면 좋겠다. 작은 불씨라도 되살리시고 활활 태우시는 당신을 만나면 좋겠다. 이번 여행이 그런 계기였으면 더 좋겠다. 참 좋으신 하나님, 더 크신 하나님, 이 우주 만물을 만드신 당신을 더 깊이 만나는 여행이었기를, 돌아보니 더욱 그러했노라고 고백하게 되었기를, 뒤늦게 다시금 간구한다.
앞으로의 삶 속에서도 더 박진감 넘치고 촘촘하게 당신과 나의 화원을 가꿔 갈 수 있기를 그저 겸손하게 바랄 따름이다.



집에 돌아와서,
2011년 2월 10일 (목) 새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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