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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이 나의 힘/바야흐로 일기 Diary

추억을 지웠다, 네이트온. 안녕.

by Minking 2020. 10. 2.

추억을 지웠다, 네이트온. 안녕.
- 추억을 삭제한 오늘을 기록함

#20201002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매일 무엇인가를 놓치고 살아간다.

이십여 년 전엔 텔레비전  때문이었고 십여 년 전부터는 컴퓨터 때문이었는데, 지금은 휴대폰 때문이고 이제는 그 세 가지의 것들이 종합적으로 나를 잠식해서 이제는 무엇 때문이라는 핑계를 대는 것도 나 스스로에게 참으로 미안해지게 되었다.

본질적으로 이제 나는 이 세 미디어가 만들어내는 시너지에 완전히 잠식된 것 같다. 텔레비전을 켜지 않으면 컴퓨터를 켜고 컴퓨터를 두드리지 않으면 휴대폰을 만지작거리고, 리모컨을 누르다가 자판을 두드리다가 결국엔 휴대폰을 만지는 세 행위 안에 내 일상이 그대로 담겨 있어서, 그것이 잠식인 것조차 모르게 되는, 그 안락하고 따뜻한 망각의 세계에 이미 들어앉아 있다.

책을 좋아했고 글쓰기를 좋아했고 메모를 좋아했다던 나는 그렇게 스스로에게서 잊힌다. 비약이나 자학이 아니라, 정말로 나에게 솔직하게 말하자.

책이니 글이니 시이니 하는 식의 말을 꺼내는 것은 2020년의 나에게는 위선인 것 같다는 고백을 해야 하겠다고.

각설하고, 그래서 오늘은 결국 묵은 계정 중 국보급이던 네이트온 계정 삭제 이야기.
기억하기 위해 시작했을 컴퓨터와 휴대폰, 계정해지 버튼이나 삭제 버튼 하나 누르고 잊어버린 것조차 잊어버리고 살기엔 너무 오랜 시간 내 구형 노트북 속에서부터 나와 함께 했을 추억의 메신저, 네이트온. 
아마도 대략 2000년부터 2010년 무렵이었을 것이다. 작년이었을까, 싸이월드가 완전히 문을 닫았다는 소식과 그 안에 있던 사진들을 미처 백업하지도 못했는데 몽땅 날아갔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의 그 헛헛함이, 아직도 선연한 걸 보면... 20대와 30대 언저리 나의 추억이 담긴 어느 공간이 그렇게 사라져 버렸다는 것이 얼마나 허망하게 느껴졌던가, 싶다. 그리고 이제 네이버 메일로 날아온, 네이트온 휴면계정처리 메일을 읽자마자, 어이쿠. 네이트온은 이제 그만 써야 되겠다는 현타(?!)가 오고 말았다.

그도 그럴 것이, 작년엔가 내 네이트온 계정이 어느 해외, 구체적으로는 중국과 동남아쪽 IP로 여러 번 털렸다는 소식을 듣게 되고 나서부터였다. 너무 황당하고 또 무섭기까지 해서, 온갖 수단을 동원해 어렵사리 비밀번호와 다양한 방식의 잠금장치를 걸었는데. 

그때도 계정 삭제를 고민하였으나 그대로 둔 것은, 역시나 네이트와 함께 했던 추억과 싸이월드를 오갈 수 있었던 수단이 된다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안에 들어 있던 옛 메일들. 특히 대만과 까오슝에서의 추억이 담긴 업무 메일들 때문이었는데. 그리고, 네이트온과 싸이월드가 한몸이던 시절의 오랜 추억이 도저히 계정 삭제를 못 하게 막았던 것이지.
친구맺기를 하며 일촌과 이촌을 오가는 일과, 사진과 이야기 사이에서 그 어느 쪽을 선택하며 나의 글을 담던 추억들이 작년과 올해, 타의적이자 자의적으로 하나씩 날아가는 순간이었다.

기억이 힘이 되려면 기록되어야 한다는 데 동의한다.
그리고, 기록이 힘이 되려면 다수의 기억 속에 좋은 것으로 남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정론에 따라 가만히 생각하니, 네이트온이 더이상은 불필요하기도 하고 또 불쾌하기도 한 기억들까지 상기할 만큼의 가치는 갖지 못했다고 보았다.
내 손으로 계정 삭제를 누르며 한 번 더 떠올린다.
그 안에 담겨 있던 대만에서의 추억, 구체적으로는 까오숑 학교에서의 추억들을, 그렇게 가만히 내 식대로 공중에 날렸다.

높이 사라지는 풍등처럼,
서서히 꺼지는 촛불처럼.
안녕.

 

한때는 전부였던. 오늘은 계정까지도 모두,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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