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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책이 나를 읽어 BookLog

방황의 기술 / 레베카 라인하르트

by Minking 2019. 4. 26.

▒ # 2019-003-둘리일구공공삼  
▒ 제목: 방황의 기술 
▒ 저자: 레베카 라이하르트
▒ 역자: 장
혜경
▒ 판본: 2011.08.29(초판)
▒ 읽은 날: 2015.12.05(1회) , 2019.03.04~16(2회), 2019. 04.26(3회) 


↘ 영. 둘리의 추천사 첫 줄

  나는 지금 불안한가? 쉽게 답을 얻으려고 하지 마라. 당장 해결하지 않아도 된다. 계산기를 잠시 내려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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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인상, 그리고 생각에 빠지는 일

: 평소 우리가 책을 읽을 때 스스로 그 책을 고르는 선택의 순간부터 사실은 어떤 이유가 있다. 내가 그 책을 왜 골랐을까? 우연히? 아니면 갑자기 불현듯? 아니면 어떤 목적을 갖고 정교한 선택 끝에? 어쨌거나 내가 책을 읽는 것이지만, 고른 다음부터는 책이 나를 읽어나가는 과정을 확인하게 되고, 그 시간은 가만히 나를 책 속에 빠뜨리는 과정이라고도 볼 수 있다. 그래서 북로그(독후감,책감상문)의 시작에 나는 반드시 책이 나를 읽는 시간이라는 제목을 써 둔다. 거창하게 말만들기를 했지만 어쨌거나 나에게 와닿은 대목은 매번 읽을 때마다 다르고 마치 같은 사람을 만나도 매번 그 느낌이 조금씩 다르듯, 책도 그러하다. 그래서 판본과 책을 산 날, 혹은 읽은 날은 다 어떤 의미를 갖는다고 할 수 있다. 

↘ 첫. 인상

  방황이라는 것은 정서적으로 불편하다. 나만의 심리는 아닐 것이다. 독일권 철학자의 해석이므로 그 나라의 정서도 반영되어 있을테지만 기본적으로 인간은 혼란과 방황을 최소화하고 안정된 상태를 누리고 싶어하는 욕구가 있다는 것을 관습적이자 귀납적으로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철학을 소재로 한 우리 삶의 기술에 대한 이야기인 듯 했고, 자기계발서 같지 않아서 좋았다. 은연 중에 나는 지금 방황 중이라는 인식이 있었으니 이 책을 골랐겠지, 그것도 2주 행 태국 치앙마이로 가는 비행기를 타는데 가져 간 3권 중 한 권이었으니까.
다만, 강신주(철학자) 씨가 쓴 추천사를 읽다가 당황스러운 대목이 있었다. 사인을 요청하는 자리에서 만난 한 독자의 얼굴을 유심히 살펴보다가 들었던 생각으로 지면의 많은 부분을 할애했는데 그 대목이 이러하다.

얼마 전 출간된 내 책을 들고서 어느 독자가 수줍게 사인을 요청했다. 웃으면서 나는 그의 얼굴을 잠시 본다. 그러고는 펜을 잡고 책 앞면에 다음과 같은 글귀를 적었다. "여행과도 삶을 살아내시기를 기원합니다." 내 팬인지 그 독자는 사인을 받은 것으로 아이처럼 행복해한다. 나도 행복한 표정을 짓지만, 속으로는 안타깝다. 그는 내가 왜 '여행과도 같은 삶'을 이야기했는지 깊게 고민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사인 요청에 기계적으로 응하지 않고, 내가 독자들의 얼굴을 유심히 살펴보는 이유가 있다. (...중략...) 유심히 보지 않아도 상관은 없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 않아도 된다. 그저 한 번의 느낌만으로 족하다. 여행과도 같은 삶을 살아내시기를 기원합니다, 이 글귀로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은 따로 있다. "당신은 안주하면서 살고 있군요. 그래서는 안됩니다." 바로 이 말을 나는 하고 싶었던 것이다.

이 책의 첫 인상을 여기서 망쳤다. '그저 한 번의 느낌만으로 족하다.'  내가 다소 화가 난 이유는, 철학자로서 자신이 주관적으로 해석한 누군가의 인상(관상)을 통해 함부로 그 사람의 인생을 판단 혹은 재단하는 일, 더 나아가서 '안주하는 인생을 살지 마세요'라는 훈수를 너무나 쉽게 놓는 대목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 책을 끝까지 읽고 나면 자발적 방황이라는 것은 그 누구도 함부로 쉽게 말할 수 없는, 그 사람 고유의 인생길 위에서 스스로 해 나가는 수많은 찰나의 선택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데, 그 말을 하자고 본인 스스로 누군가의 삶을 한 번의 인상으로 쉽게 판단하는 오류를 저지른 것이다. 그것도 타인의 '책' 추천사라는 역사적인 초판의 지면 위에.

↘둘. 책 목차 뜯어 먹는 키워드

이 책은 자기계발과 인물탐구 형태를 띤 철학서다. 철학이 더 앞서는 키워드이기도 하다. 가볍게 시작하지만 주제로 깊이 나아가다 보면 결코 가볍지 않다.  큰 주제는 [방황]과 [불안]이다.
방황이 왜 필요한지에 대해 서술하고, 방황의 방해물과 적극적 방황의 생각도구를 안내한다. 구성이 매우 간결하다.

1. 프롤로그 - 살아가는 데 가장 필요한 것은 방황하는 기술이다
2. 방황의 방해물 - 넷 (불확실성 시대 / 나르키소스 / 과도한 이분법 / 모든 것이 당연해진 일상)
3. 방황을 위한 생각도구 - 일곱 (지름길 / 경계 / 연속성 / 죽음 / 기계 / 규칙 / 일상 철학

↘ 셋. 눈길이 머문 곳 (인용문 모음)

<프롤로그>

1. 조심 또 조심하는 편이 옳다. 하지만 이런 태도가 왜 우리가 여기에 있는지, 인생의 의미는 무엇인지에 대한 탐구를 가로 막는다. 남보다 뛰어난 시간 관리가 과연 인생의 의미가 될 수 있을까? 손실을 최소로 줄이는 것이, 최대한 즐기는 것이 인생의 최종 목표가 될 수 있을까? 그저 이 세상에 왔을 때보다 조금 더 똑똑해져서 이 세상을 떠나는 것이 삶의 목표가 될 수 있을까?
2. 어떤 땐 오히려 해결책이 없는 편이 더 낫다는 사실을 절대 이해하지 못한다.
3. 불확실성을 견디지 못하는 원인은 해결지향성이 지혜의 마지막 결론이라고 주장하는 이 시대, 어린 시절부터 효율과 효과를 추구해야 한다고 가르치면서 예측 불가능한 것들을 체계적으로 차단시키려 애쓰는 이 시대와 관련이 깊다.
4. 모든 경우에서 서둘러 올바른 해답을 내기보다는 올바른 질문을 던질 줄 아는 능력이 더 중요하다.

<불확실성 시대의 확실성>

5. 우리는 불안 역시 예방할 수 있는 불쾌한 감정에 불과하다고 믿는다. 배제할 수 있는 감정이라고. 하지만 불안은 그 이상이다. 불안은 우리 현 존재의 중요한 구성 요소다. 우리는 불안을 통해 우리 운명의 불확실성을 경험한다. 
6. 하이데거가 사용한 섬뜩하다(heimlich)는 고고독일어인 'heimlich(at home)'을 암시하는데 이 말은 '친근한', '토착의'라는 뜻으로도 쓰인다. 그러므로 불안의 섬뜩함은 그것이 우리를 친숙한 관계로부터 뽑아내 버리기 때문에 오는 감정이다. 불안은 디플레이션이나 수입 하락과 아무 상관이 없다. 그것은 그냥 늘 거기 있다. 우리가 불안한 건 이런 저런 위험이 임박했기 때문이 아니다. 그저 우리가 인간이기 때문이다.
7. 불안이라는 '기본 처지'와 '조심성'이라는 '인생 자세'에는 큰 차이가 있다. (중략) 우리는 인생에 대한 통제력을 최대한 확장하려 노력한다. 운명의 제물이 될까봐 조바심을 내는 우리는 눈에 띄게 즉흥성을 잃어 버린다. 계속 걱정할 거리가 있는 곳에 용기와 도전이 들어설 자리는 없다.  
---> 우리는 불안하지만, 조심하며 피해자가 되지 않으려 애쓸 것인지, 적극적으로 방황을 선택하며 나아갈 것인지를 결정할 수 있다는 것.
8. 하이데거로 돌아가 보자. 현존재에게 불안을 일으킬 수많은 가능성의 공통분모를 찾거나 그 가능성을 줄이는 일은 불가능하다고 그는 말했다. 세상은 가능성의 무한성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면 우리는 늘 자신이 무엇이 되기를 원하는지 새롭게 결정해야 한다. 결국 대안은 두 가지뿐이다. 불안을 주는 고독과 불쾌하고 섬뜩한 성찰의 공간을 이용하여 자기 인생을 손아귀에 넣느냐, 아니면 사람들이 우리를 책임지는 공공의 보호 공간으로 들어가느냐. 후자의 보호 공간에선, 하이데거의 비판대로, "각자는 타인이고 결코 자기 자신이 아니다."

< 나르키소스 2.0 >

9. 나와 자아는 현대인의 기본 어휘를 관통하는 주요 모티브다. 자의식, 자신감, 자존감과 건강한 자아는 행복한 삶의 기본 조건이다 .어떻게 하면 자의식이 자랄까? 쇼펜하우어 전집을 들고 방에 틀어박힌다고 되는 건 아닐 것이다. 그보다는 자신(온전한 나)을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편이 더 나은 방법이다. 어떻게 하면 진짜가 될까? 자신에 대해 말하고 자신의 욕망과 희망을 분명히 밝히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최대한 오해의 여지가 없도록 알리면 된다.
10. 아이맥, 아이폰, 혹은 아이패드(아이는 I)는 우리 자신의 초현대식 화신이다. 우리는 우리가 구매하는 것이다. 
11. 나르키소스. 그게 우리랑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우리는 사랑에 빠져 연못가에 누워 있는 것이 아니라 넋을 잃고 전자 기계 앞에 앉아 있다. 우리는 보고 싶고 보이고 싶다. (중략) 우리가 보는 것은 우리 자신의 우연한 편린, 단순한 재생산이다. 나르키소스와 달리 우리는 가상적 나를 실제의 나로 생각하지 않는다. 적어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우리의 나가 복제되고 독립할수록, 그것이 휴대전화, 모니터보호기, 운동화 등의 더 많은 라이프스타일 분야를 확보할수록 원본과 복사본을 구분하기가 힘들어진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자신이 가진 것, 복사한 것, 다운받은 것, 밖으로 보이는 것인가? 나의 관심과 두려움과 애호와 거부감에 점점 더 집중할수록 우리는 점점 더 불확실해진다. (중략) 그렇게 얻은 자의식과 자존감에는 끝없는 안전대책이 필요하다. 
12. <앤디워홀의 철학>에서 그는 매일매일 거울을 들여다보며 언제나 새 여드름을 찾아내며 스스로 말한다. '알코올이 다 마르고 나면 마침내 살색 여드름 연고를 바를 수 있다. 이제 여드름은 가려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안전할까? 또 다른 근거를 고대하며 거울을 바라보아야 한다. ' 고. 거울이 전달하는 안정감은 일시적이다.거울과 대면할 때마다 새로운 위험이 등장한다. 거울 속의 살피는 시선은 매일 되풀이되는 자신과의 투쟁을 상징한다. 
13. 우리는 너무나 자신에게 집중하고 있다. 자기애가 너무 커서 자신의 관심사 말고 다른 것이 있다는 사실도 잊어버린다. 인생은 탐구해야 할 비밀과 수수께끼로 가득하다는 진리를 잊어버린다. 자신에 대한 생각, 자신의 능력과 이미지에 대한 생각을 차단하려 애써보자.

<과도한 이분법적 사고> - 선과 악을 구분하는 일에 대하여

영국 찰스 왕세자는 충분한 시간 동안 어린아이일 수 없었기에 올바른 어른도 되지 못했다.
((아직 여기까지 기록 중)) 74쪽부터 다시 시작........


↘넷. 책이 나를 읽는 시간

불안은 선이나 악이 아니다. 운명적으로 사람이, 현존재가 태생적으로 지니고 있는 근원적 상태이다. 그러므로 불안은 잠시 잊을 수 있어도 완전히 벗어버리거나 도망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이 불안을 자기 삶의 테두리 안에서 어떻게 해석하고 적절한 선택을 할 것인지, 거기서 삶의 자세가 만들어진다. 

무신론자가 해석하는 불안과 유신론자가 하는 불안은 차이가 조금 있을 것이다. 지금 나는 어떤 삶의 태도로 살아가고 있나 돌이켜 본다. 적어도 나는 유신론자이지만 삶의 태도가 거기에 부합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내 삶 구석 구석 신이 개입하고 있다는 생각을 잘 하지 못한다. 그렇지만 신이 존재한다는 믿음과 확신은 아직 남아 있다. 그런 의미에서 철학적으로 철저히 방황과 불안을 탐구해 보는 과정과 더불어, 신의 관점에서 이 방황과 불안은 어떻게 해석될 것인지도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방황의 기술
국내도서
저자 : 레베카 라인하르트(Rebekka Reinhard) / 장혜경역
출판 : 웅진지식하우스 2011.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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